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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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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To have가 아니라 To be 자체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05.05
  송선순


내 생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꾸역꾸역 남들 이상으로 노력하면 늘 뭔가 가슴으로 손으로 남는 것이 있었다. 어느 보살이 나에게 말했다.그래도 당신은 노력하면 얻는 것이 있으니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학생들에게 테니스로 재능기부 시작한 지 6년이 흘렀다. 맨 처음 나를 아는 사람들은 '지까짓게 그러다 말겠지'라고 했다. 3년이 되자 사람들은 '아직도 하고 있는거야?'라고 했다. 6년이 흐른 지금, 비트로팀원들은 주변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아, 정말 존경받을 만 하다. 눈돌아가게 바쁜 세상에서 마음 먹은 것 꾸준하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터인데.."

난 심지(心志)가 있는 편이다. 어쩌면 그 심지 때문에 주저앉지 않고 아직도 양 다리를 굳건하게 땅에 디디도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심하면 밀고 나가는 오기와 고집도 있다. 대학생 행사 한 번 치르려면 학생들 모집부터 마지막 기사로 마무리 하기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한다. 팀원들 도움이 없다면 할 수 없다. 가끔 전화로 밀당하는 담당자, 가끔 내 가슴을 칼로 도려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해 포기하지 않는다. 아직은 이르다. 질풍경초 疾風勁草. 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연 잎 위에 고인 물방울처럼 소리없이 놓을 날이 오려니.

젊고 싱싱한 학생들을 보라, 250명이 참석했다. 그들은 이제 동아리 회장이 바뀌면 나에게 새로운 회장 전화번호를 알린다. 처음 3년 동안 나는 매 번 새 회장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왔다. 이것이 바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11.06
  송선순

연변자치주에 관한 여행기를 양면 기사로 썼다. 이상하게 그쪽 동포를 생각하면 가슴 한 쪽이 서늘하다. 도문시에 빈 아파트가 많은 이유는 거의 다 우리나라로 돈을 벌러 갔기 때문이란다. 연변은 대한민국 없으면 매우 형편이 곤란했을 것이라는 소리도 스스럼 없이 했다.  

언어가 통하고 임금이 높은 우리나라에 와 3D일을 마다하지 않고 벌어들인 돈으로 그곳에 집을 산단다. 여성들은 5~10년씩 우리나라로 건너와 일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조국이 잘 살아야 그 핏줄들도 어디에 살든 비빌 언덕이 생기는 것이라고. 매 년 배낭여행을 떠나보면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 국력이다. 국력이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정치는 모르지만 그러나 가끔 신문을 읽다 종일 돌덩이가 가슴에 무너져 내리는 듯 하다. '정말 나라도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을때는 더욱 그렇다. 내가 만난 테니스 동호인들은 부자였다. 집에 외제차 몇 대씩 꿀리는 사업가들이 취미로 테니스를 즐기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하룻밤 34만원 크라운 플라자에 묵으며 백두산 화산 온천을 오후 내내 실컷 즐기도록 1박 2일 우리를 위해 많은 돈을 쓴 박미화 사장 부부.  열 번도 더 왔다는 천지를  안내해 준 박미화 부부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 했다. 그 사람들이 생각 하는 정이라는 것은 무엇 일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헌신적으로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오랫만에 나는 그 情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 외에도 22일 머물며 밥을 네 번 밖에 안해먹을 정도 매 번 대접을 받았다. 양창휘 회장을 비롯해 그 동생 양순자. 또 그밖에도 다양한 분들의 사랑을 받고 왔다. 내가 선물로 준비해 간 비트로 티셔츠 여러장, 대접 해 주는 분들마다 챙겨드렸다. 한국 제품은 무엇이든 최고라며 기뻐하는 그 모습이 오래 남는다.

09.18
  송선순
`
내가 박준의 시집을 들고 있으면 늘 유선생은 나에게 말했다. "무슨 시집 이름이 그래, 도대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뜻이 뭐야? 나는 아무리 봐도 저 시집 이름의 뜻을 모르겠어...! 내 참!!" 그랬다. 유선생에겐 확실한 논리가 아니면 철학이거나 상상이거나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난 평소 박준의 시를 곧잘 읽는다. 먼저 죽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부분도 절절하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자기가 누이보다 먼저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소소한 가정사가 절절하다. 어제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산문집을 주문했다. 현재 내가 울든 안 울든 우리가 발 딛고 선 그 지점이 언제나 출발선이다. 지질하게 어려웠던 과거를 날려 보내는 의식 같고 풍장(風葬)시키는 기분으로 읽고 싶다. 종일 내리는 이 빗속에서 나는 습기를 다 제거한 박제된 짐승처럼 건조한 허허로움을 이겨내지 못한다. 무슨 병일까? 2017.07.03


07.03
  송선순


5월 3일 부처님 오신날, 나는 종일 집에 머물렀다. 운신할 수 없이 무거운 몸과 마음은 수미산 55㎞의 코라 전 일정을 오체투지로 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종일 떠나지 않던 내 삶에 대한 점검,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자식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 하루종일 나와 연계된 주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 했는데, 아직도 나는 내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히 사람에 대한 욕심,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꼭 달성시켜야 한다는 여러 중압감, 그러다 문득 이 사진 한 장이 나를 웃게 했다. 그냥 내가 나답게 살고 있다는 증표 같아서랄까? 나는 나만의 고유한 파장이 있고 그 파장 안에서 살고 있다. 난 그냥 나다. 내 자식들이 나의 질경이 같은 유전자를 받았을까? 늘 어렵고 힘든 과정을 헤쳐 이 나이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 강한 정신 같은 것을 말야...



05.04
  송선순


늘 우천이 문제였다. 제 42회 화곡대회는 4월 17일 18일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천 예보가 있어 국화부 경기 하는 18일 화요일에 입장식을 하고 비가 내려 다시 연기. 19일 개나리부, 20일에 국화부 경기를 하여 마무리 지었다. 전년 대비 참가자 숫자가 늘었다. 참가상품의 힘이 그렇게 크다. 좋은 참가상품을 준다하니 테니스계가 떠들석했다. 연기되는 바람에 100명이 참석을 못했다 하더라도 작년보다 참가 인원이 많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이 된다.

대회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고, 예산 부족하다고 저녁을 부치게 붙여 먹고 그냥 회원들을 돌려 보냈다. 할 수없이 취재차 초청한  방기자의 저녁 식사 대접은 내 몫이었다. 회장이 바뀌니 정책도 틀려진다.

누구를 탓 하기 보다는 내가 화곡 회장 5년 하는 동안 아우들이 내게 했던 말. "정말 몇일째 대회 진행보고 집에 늦게 가서 혼자 컵라면 먹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그때는 밤 열한시가 다 되어서 대회를 마쳤으니 어딜 가서 식사를 함께 하려고 해도 문 연 음식점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번 대회는 연기되어 오후 8시도 안되어 경기를 마쳤는데도 회원들을 그냥 돌아가게 했다. 60명 거느린 클럽의 회장이 바뀌어도 이렇게 판도가 달라지는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분이 당선되느냐에 따라 우리 대한민국 명줄의 향방은 180도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해 보는 아침이다.




04.24
  송선순


이번 2017 화곡대회 팜플랫에 광고 한 페이지를 실어주는 공항공사.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공항공사에서 나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이미 삼다수에서도 광고를 받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공항공사는 매우 철저했고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만큼 철두철미했다. 군인다운 철처함과 절제, 나는 또 배운다. 별 네개는 하늘에서 내려준다고 하듯 나는 매사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감사드린다.


04.07
  송선순


태어난지 일주일 된 우유는 분홍색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름을 얻었다. 세현.李洗賢. 우유의 외할아버지rk 작명가에게 부탁해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영문명으로는 어렵지만 나름 괜찮다는 평. 단 왜 이름에 씻을 세를 넣게 되었는지 유선생이 테클을 거는 중이다. 우유는 하루하루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직도 빛에 약해 눈을 뜰때면 찡그린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이 작은 손으로, 이 작은 발로 언젠가는 오똑서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몫을 당당히 해 나갈 인재로 자라게 되기를 빈다. 건강하게 잘 자라길 세현!!


03.23
  송선순


헹가래라니..아직도 이 남성분들은 자기들이 30대 인줄 아나봐. 나이가 무려 환갑도 넘은 62세나 되는데. 몇일전 56년생과 59년생이 각각 5복식 돈 100만원을 걸고 한판 승부를 했다. 힘 좋은 59년생이 이길것 같다고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완패를 했다. 역시 테니스는 구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일축했으나 기어코 칼을 갈아 다음달에 도전을 하겠단다. 테니스가 좋은 것은 직업과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 과거 푸르던 시절 코트장에서 만났던 남성들을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참으로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없다는 것. 그래서 오늘이 중요하다. 내 마음 쏠림도 소중하다. 내 맘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며 살련다.

03.23
  송선순

내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다.
묘한 설레임이 종일 가시지 않았다.
아들은 내게 진통하는 동안 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출산 예정일을 넘기고도 전혀 산기가 없는 아들 내외를 불러다가
손주 쑥쑥 잘 낳으라고 쑥국을 끓이고 등심을 구어 먹였다.

그 이튿날 아들 며느리는 병원으로 입원했다.
친정 어머니도 부르지 않고 오로지 둘이서 손을 잡고 호흡을 같이 하면서 건강한 우유를 낳았다.
창조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하늘이 노란 진통을 10시간 이상 견디면서 아들 내외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막 태어난 여린 자식을 품에 안았을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그 어린 생명이 첫 울음을 울었을때 과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신비로운 새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책임감이 아니었을까?

며느리가 대견했고 우유를 안고 있는
아들의 어깨가 더 넓어 보였다.
이렇게 기쁜날, 이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먼저 떠난 그사람을 잠시 생각했다.

나도 이제 손주가 둘인 진짜 할머니다. 태어나자 마자 두 눈을 떴다는 우유는 서준보다 무려 3일이나 더 빨리 눈을 떴다.

태명-우유
몸무게-3킬로
성별-여
출생날짜 2017년 3월13일 오후 7시반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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